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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함수의 모습을 보이는 노동소득 그래프와 지수함수의 모습을 보이는 자본소득 그래프를 겹치면 두 그래프의 교차점이 생기는데, X축을 시간으로, Y축을 소득으로 했을 때, 처음에는 노동소득이 자본소득을 앞지르지만, 어느 순간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가로지르며 급격하게 상승하는 지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두 개의 그래프가 겹치는 지점이 바로 자본 소득이 노동소득을 앞지르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노동소득은 최대한 빨리 최대 상승치까지 끌어올리고,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지나 상승하는 지점을 최대한 Y축쪽으로 앞당긴다면 바로 그 시점, 즉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넘어서는 바로 그 시점이 최소한의 노동으로 만족할 만한 삶을 살고, 돈에 얽매이지 않는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세계적인 사모펀드 블랙스톤 그룹의 회장 스티븐 슈워츠먼은 '투자의 모험'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떤 사업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중요한 결론에 도달했다. 작은 사업을 하는 것이 큰 사업을 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이다. 시작하고 나면 큰 사업이든 작은 사업이든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동일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돈을 모으고 적당한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렵다."
따라서 만약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그것이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 더 거대해질 수 있고, 확장될 수 있는 잠재력이 큰 사업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개인적인 시간과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는데, 삶의 목표를 성취해 나가는 동안, 성취 잠재력이 가장 큰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이 더 나은 결정이다.
어떤 목표를 지니고, 어떤 일을 하든, 성과를 올리는 문제에 관한 가장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전략은 '실행 격차'를 좁히는 것이다.
실행 격차란 우리가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 사이의 격차를 뜻한다.
모든 사람은 이 실행 격차를 갖고 있지만 위대한 성취를 이룬 사람은 바로 이 실행 격차를 없애거나 최대한으로 줄이는 방법을 찾아낸 사람들이다.
특정한 결과에 대해 보상을 기대하면서 삶을 흘려 보내는 것을 '도구주의적 삶'이란 말로 표현하는데,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이를 '퇴락'이란 말로 꼬집었다. 즉 중요하지도 않고, 필요도 없는 분주함 때문에 다가오는 죽음을 외면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모습에 일침을 날린것이다.
노동소득의 핵심은 얼마나 빠르게 몸 값을 연봉 상한선까지 올릴 수 있느냐가 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가 바로 '직무 역량'이다. 대체적으로 직무 역량이 높을 수록 몸 값도 빠르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 초년생 때 부터 일정 기간 까지는 몸 값을 높이기 위해 직무 역량을 최대한 빨리 기를 필요가 있다.
천지의 본성은 바로 사사로움이 없음인데, 천지야 말로 가장 사사로움이 없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며, 만물이 생존하도록 돕기 위해 존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도를 얻은 사람은 천지와 같이 사사로움이 없고, 뒤로 물러나 거하며 아래에 머무르지만, 결과적으로 자아를 성취하고 앞에서 이끌며, 위에 거하게 되어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도'는 분명히 느끼고 체득할 수 있는 것으로, 진정한 도는 언어나 문자가 아닌 오직 마음으로 깨달아야 한다.
'무형'의 역량은 유형의 것보다 위대하고, 음이 양보다 중요하며, 음의 부드러움이 늘 양의 강건함을 이긴다. 이를 통해 종국에는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된다.
노자는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무르기 때문에 도에 가깝다고 했는데, 이는 물이 만물을 윤택하게 하면서도 만물과 어울리고, 다투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의 기운을 받은 태아가 사람의 형상을 갖추는 순간, 씨앗에서 새싹이 싹트는 순간, 작은 점 하나가 빅뱅을 일으키는 순간과 같은 것들이 바로 경계이다.
이 경계는 인간과 만물, 우주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되는데, 우리는 '경계'가 주는 긴장감 속에서 매일 살아있는 존재가 되고, 그렇게 살아있는 존재가 됨으로써 생활 속에서 '도'를 실천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